광덕산을 걸으며

2021. 11. 20. 09:16시나브로지만 괜찮아 [수필 2집 준비중]

천변 산책길에 나섰다.

일년전, 다도수업 끝내고 버스를 타기 위해, 비보호길이었지만, 사람들이 흔한 시장 사거리였다. 길을 건너다 달려오는 포터에 부딛혀 넘어졌고, 겉은 멀쩡 해보여서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고 나왔다.

하루 이틀 사흘 날이 갈 수록 허리통증에 다리통증이 심해져 병원 다니다 진전이 없어, 한의원을 다니며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거의 일년 정도 완쾌는 아니었지만, 치료비만 받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다리통증은 일년이 넘어도 걷는데 무리가 와서, 산책이 도움이 된다 하여 시작한 산책이었고, 둘레길 여행에 자주 다니던 때기도 하고 코로나가 시작 되면서, 여행이 중단 되다보니,고삐 풀린 망아지 처럼 한달에 서너번씩 다니던 여행을 못가게 되니 생병이 날 지경이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천변 걷기였다. 사방 팔방 어느곳으로 가든 자유라 처음 은 뜬금없이 일봉산이나 봉서산을 오르거나 유랑동을 걷다가 태조산을 오르기도 했다.

지인들은 여자혼자 겁없이 산을 오른다며 걱정을 해주곤 했지만, 나름 혼자 다니는 산행도 괜찮아서 걷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산을 오르기도 했다.

한가지 혼자는 편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무서운거 빼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다닐 수 있다는 여유로움이 그런가보다. 산에 오를 생각은 아니었다. 아직 불편한 다리에 무리가 오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데 그날은 아무래도 뭔가에 홀린듯, 원성천 위로 올라와 광덕행 버스에 올라탔다.

야생화 회원이어서 봄에 산에 꽃씨를 뿌리러 다녔고, 산약초 회원일 땐, 약초공부 실전을 위해 산을 오르기도 해서

겁없이 아니 정신상태가 불안 했거나 뭔가에 홀렸는지, 왜 광덕산을 가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버스 안에서 부터 맨붕이 오기 시작했다. 종점이 가까워 오니 버스에 남은 사람은 시골 어르신 두세명뿐, 연세 지긋한 노인 한분이 종점이니 내리라기에 내렸다.

"아줌마는 어딜가우"

"광덕산 이나 올라가볼라구요"

"잘됐네 나도 마침 광덕산 올라가니 같이 동행 합시다.나는 자주 오른다오"

광덕사 절로 들어서니 낯익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헐 이런 행운이 나이 80이 넘으셨다는 어르신의 말씀에 내부모님 뻘이다. 설마 80 넘은 어르신도 올라가는데, 내가 못오를리 없지, 의기양양 하게 어르신과 동행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꽃씨 부리며 오르던 길이고 신이나기에 어르신과 얘기도 하고, 사진 찍는 것도 부탁하고 하지만 3분의 1쯤 오르니 숨이 차기 시작하고 어르신은 캐캐 묻은 과거부터 해외로만 평생을 일했다며 늙으막에 이렇게 산을 즐겨타신 다며 이야기는 그칠줄 몰랐다. 처음엔 존경스럽기도 하고, 참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이 들면서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남자나 여자나 나이들면 말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숨이 턱에 차고 어르신 목소리가 거부반응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엔 말이지 광덕산 꼭대기 가면, 막걸리 팔았어, 탁배기 한잔하고 나면 그렇게 막걸리가 맛있을 수 없어, 요즘도 있으려나 몰라, 그게 광덕산 오르는 재미지"

이젠 그만 했으면 싶건만 어르신은 신들린 사람처럼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혼이 반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 어르신 얼마나 더가야 합니꺼 다리도 아프고 죽겠심더"

"조금만 더올라가 다왔어"

어르신 그 조금이 언젠데요,

아 조그만 참어 다왔다니까?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헉 헉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허리까지 구부정하신 어르신은 땀 한방울 안 흘리고, 계속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는데,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젠 무슨 말을 하는 지 조차 알아듣기 힘드는 데, 이야기는 산을 오를 때 부터 한시간 넘게 그치지 않고 이어 지고있었다.

"어르신 제가 작년에 교통사고로 다리가 완전히 낫지 않아 정상은 무리예요, 어르신 함께 못해 죄송합니다 어르신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여기서 내려갈렵니다.

"아픈 다리로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대단한 것이네, 나는 내려갈 땐, 장군바위로 갈 생각이니 잘 가시게 하며 휘적휘적 올라 가신다. 기진맥진 하니 만사가 귀찮고, 물 한모금 얻어 마실 곳도 없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 갈증으로 목이 탔다.

몇몇 사람들이 스쳐갔지만 말 한마디 꺼낼 힘 조차없다. 내려갈까? 올라갈까? 그자릴 맴돌다. 정상이 코앞인데 이대로 가면 아니온 건만 못하지, 80 넘은 어르신도 오르는 길을 힘내자, 쉬고나면 다리가 덜 아플거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빌어먹을 몸이 천근만근이고, 안 아픈 곳이 없고, 그만큼 땀을 쥐어 짰는데도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이젠 계단 까지,

"아저씨 정상 얼마쯤 남았어요"

스틱 두개 짚고 오르면서 계단에 쉬던 남자가 대답했다.

"10분이면 도착해요"

"10분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기 밖에 더 하겠냐" 싶어 계단을 두발이 아닌 네발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 해도 가관이다. 가파른 경사길이 꼬불꼬불, 뭐가 10분이냐고, 30분 쯤 간듯하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정도다.

"그래 광덕산 신령님아 나 잡아가라, 내가 미쳤지, 예까지 뭐하로 왔노, 헥헥 헥, 삼복 더위에 개마냥 헥헥거리는 내꼴이 비참 그 자체인데 배에서 쾌송시계까지 울린다. 꼬르륵 소리가 이토록 처량할준 처음 알았다.

겨우 일어섰더니 오마이갓! 왠 비석, ooo 산사나이 여기 잠들다.

이건 아니다 싶어 몇 발자국 더 걸으니 정상이다. 아산시가 보였다, 여기 저기서 산을 올라온 남자들이 물을 마시거나 김밥을, 빵을 우유를 도시락을 드신다. 여자는 나 혼자뿐이다. 먹다 말고 나를 흘금흘금 쳐다보신다.

"여자 혼자 오긴 험 한곳인데 700미터 높이가 다른 산보다 험한데 아줌마 대단하시네요, 혼자 오셨오"

낯선 아저씨가 살갑게 말을 건넨다.

"일행이 있었는데, 내가 뒤쳐져서 가버리셨나 봐요, 정상에서 뵐줄 알았는데, 내려가는 가까운 길은 따로 없나요,"

"3군데 있는데, 아줌마 온길이 제일 짧은 코슨데, 이쪽은 강당골 가고 여기는 장군바위 가는 곳인데 내려가긴 편해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기다시피 올라온 길을 되돌아 간다는 건 소름이 돋았다.

서두르자 싶어 장군바위 방향으로 내려오는데.

"아줌마 같이 갑시다." 무슨 여자가 걸음이 그리 빠르요"

우락부락하게 생긴 덩치 큰 아저씨가 쫒아오니 더럭 겁이났다. 좀전에 강당골 쪽으로 간다던 아저씨 였다. 아저씨 강당 골 가신다면서 왜 이리로 와요, 길이 다른데, 경계하듯 걸음을 빨리 했다.

"맞아요 강담골 가는 거 아까 그길은 너무 멀어서 여기 중간쯤 어디 샛길 있는데, 지름길이 있어요 혼자 보다 같이 가면 좋잖아요" 하며 따라온다.

<숲보다 아저씨가 더 무섭구만, 왜 자꾸 따라오는 건데 미치겠네> 속으로 중얼 거리며 거리두기로 앞서 걸으니"

"아줌마 천천히 갑시다. 나도 젊은 땐, 날아 댕겼는데, 나도 이젠 늙었네 허허 하며 웃으신다.

"아줌마 좀 쉬어갑시다. 좀 앉아보소"

나는 주춤 거리며 돌아섰다.

" 차 한잔 마실려우, 커피는 아니고, 무거워서 버리기도 아깝고, 아줌마는 길이 머니 마시면 힘 좀 날거요"

몸에 좋은 차니 마셔요 하며 종이컵에 따라 주는데, 레몬향이 허기진 배에 자극을 준다.

추워서 오그라 들던 손에 따뜻한 온기가 종이 컵을 통해 아저씨 인정이 느껴진다. 훌쩍 마시자, 아저씨는 인자한 웃음 을 흘리며 한잔 더드시려우 하며 따라준다.

"고맙습니다 하고 얼른 마시고 빈컵을 쥐고 버리지도 못하고 서있자.,

"빈 컵은 이리줘요, 쓰레기는 가져가야지. 나는 이길로 가야하니 조심히 내려가요" 하며 가방에 보온병을 넣고 가방을 지고, 울창한 나무 숲 오솔길로 들어가신다.

 

"아저씨 거기 길은 맞아요" 걱정이 되어 묻자.

"기억이 나네 예전에 이길로 내려간 적이 있어 잘가요"

숲안으로 사라져 가는 아저씨 뒷모습을 보다가 길을 재촉했다. 내려오면서 장군바위에 도착해 사진 찍고 서둘러 내려왔다. 올라오는 사람은 몇명 되었지만 내려오는 이는 별로 없었다.

단풍나무들이 너무 예뻐서 사진 찍다 보니, 이미 탈진 해버린 몸은 피곤한데도 아저씨가 준 레몬 차 덕인지 땀도 나지 않았다. 덥다고만 느껴졌다. 다리통중으로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걸었다. 자꾸만 걸움이 더디고 사람 하나 구경 할 수없는 상황까지 오니 덜컥 겁도나고 내가 길을 잘못 온 건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이 다든다. 차라리 그아저씨 라도 따라 갈걸 그랬나 후회도 되고, 어느 부분 하늘을 가린 숲에 오면, 머리끝이 쭈볏 서기도 하고 1,4km가 이렇게 긴 건가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30분 넘게 혼자 걸어도 사람 그림자 조차 볼 수 없으니, 더욱 조바심이 났다. 고요함과 배고픔에 지칠쯤 가까이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팡이 삼은 나무를 버렸다. <인가가 어딘가에 있구나,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뒤돌아 보니 낯선 아저씨 한 분이 배낭을 지고 나를 스쳐 앞질러 가신다. 살았다.

그리고 두런거리는 사람들 말소리, 30, 중반쯤 보이는 여인 2명이 단풍나무가 예쁘다며 사진을 찎고 있었다.

절둑 거리며 버스 정류장앞 편의점에 들려 우유를 사서 마셨다, 허기를 면하니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