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침

2011. 12. 21. 08:19유머

 
 
어느 동네 앞 고갯마루에 소금장수가 올라섰을 때 한 부부와 마주쳤다.
부인이 먼저 소금장수에게 말을 붙였다.
"여보 소금장수, 저 마을로 소금 팔러 가오 ?"
"예, 그런데요."

"그러면 우리 집에는 가지 마오.
집에 딸 하나만 남겨두고 일가 잔치 집에 가서 사흘 후에나 돌아오니 소금 살 사람도 없소."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댁이 어딘지 알아야 안 가지요."
어리숙한 부인은 소금장수에게,
"저기 저 지붕 위에 고추 널어놓은 집이 우리 집이니 가지 마오."
하고 일러주었다.

속으로 오호 쾌재라 하고 속 웃음을 짓던 소금장수는
"예, 그러지요. 염려 말고 다녀오시오."
하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곧바로 처녀 혼자 있는 집으로 달려간 소금장수는 삽짝문 앞에서,
"아가야."
 하고 호기 있게 처녀를 불렀다.

이윽고 커다랗게 말만한 처녀가 나와
"우리 집에는 아무도 없소."
하고 숨어 버리자 소금장수는 다시 근엄한 목소리로,

"이리 나오너라. 나는 네 외삼촌이다. 어려서 너를 보고 인제 보니 몰라보겠구나.
여기 오다가 네 부모를 만났는데 일가 잔칫집에 간다며 사흘 후에나 돌아오니 잘 봐 주라고 하더라"

그제서야 안심한 처녀는 나와서 절을 올리고 방에 모신 뒤 씨암탉까지 잡아 대접했다.
해는 지고 슬슬 흑심이 동한 소금장수는 처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아가, 너 속병이 있어서 고생하는구나."
하고 넌지시 수작을 거는데,

"아니오.전 아무 병도 없는데요"
"그래 ? 너는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너 해를 보면 눈이 시큼시큼 하지 ?"
"예."
"그게 속병이 있어서 그렇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불룩하지 ?"
"예."

"거 봐라. 무거운 것을 들면 팔이 나른하고 아프지 ?

그리고 높은 데 올라가거나 달음질치면 가슴이 벌떡벌떡하고 숨이 가쁘지 ?"
"예. 정말 그런데요"
"그게 다 속병 때문이다. 얼른 고쳐야지 그냥 두면 큰일난다."

겁을 먹은 처녀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떻게 고치나요 ?" 하고 묻자,
"속에 든 고름을 빼야 한다."
"속에 든 고름을 어떻게 빼나요 ?"

"그건 어렵지 않다. 가죽침을 맞으면 쉽게 빼낼 수 있단다."
"그럼 얼른 가죽침을 놓아 고름을 빼 주세요."

드디어 소금장수는 처녀를 눕히고 치마를 걷어올린 뒤 속곳을 내렸다.

"조금 아프더라도 후련해질 때까지 참아라.  그래야 병이 낫는다."
결국 허기를 채운 소금장수는 푹 잠을 자고 아침상까지 푸짐하게 받았다.

장난기가 발동한 소금장수는 한 번 더 가죽침을 놓고 삽짝을 나서며 처녀에게 한마디 당부를 했다.

"가죽침을 놓아 흰 고름을 빼내 그것을 종지에다 잘 받아 두었으니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꼭 보여 드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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